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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맛 - 금곡동 장어마을 장어양념구이

-1980년대 중반까지 낙동강서 갓잡은 민물장어로 요리
-동원마을, 아예 '장어마을'로 불려...한때는 16곳 성업
-지하철 공사로 길 막히고 아파트에 밀려 몇 곳만 명맥 유지
-한 점씩 일일이 굽고 또 구워 양념을 하나하나 골고루 발라

    3대째 옛맛을 고수하고 있는 북구 금곡동 웅천집의 양념장어구이.

지금이야 민물장어라 불리는 (뱀)장어는 거의 99%가 양식산이지만 낙동강에 하굿둑이 들어서기 전까지인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깨끗한' 낙동강변에서는 장어구이가 부산을 대표하는 요리로 유명세를 떨친 적이 있었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 마을의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쭉 늘어선 장어구이집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곳의 이름은 북구 금곡동 동원마을이었지만 사람들은 장어구이집이 몰려 있어 '장어마을'이라 불렀다.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마을 입구에는 멀쩡한 마을 이름 대신 아예  '금곡 장어마을'이라 음각된 어른 키보다 큰 입석이 있었다. 부산시가 '부산의 7진미'로 선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낙동강 뱃길을 쉬어가는 나루터로, 수참이 설치되기도 했던 동원마을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2000년대 초반 지금의 이안금곡아파트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당시의 장어구이집 몇몇은 장어마을 인근에서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 장어마을을 아시나요
부산 북구 덕천교차로에서 경남 양산으로 가는 도로를 내달리다 보면 아파트숲을 만난다. 화명동 신시가지다. 여기에서 양산 방면으로 버스 한 구간만 더 가면 금곡동에 닿는다.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에서 낙동강변 쪽으로 뻗어내린 첫 골짜기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0년대 웅천집 모습. 뒤로 보이는 산은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 낡은 흑백사진을 스캔받았다.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낙동강변의 금곡동은 사방이 논밭이었다. 부산이 도시화와 산업화가 한창 전개될 때에도 이곳 사람들은 아침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생업을 위해 각자 논으로 강으로 일을 나갔다.
 금곡동에는 예부터 동원·공창·화정·율리 등 자연부락이 넷 있었다. 현재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부산지하철 2호선 역 이름이 '수정-화명-율리-동원-금곡-호포'순인 것도 이러한 자연부락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낙동강변 금곡동 네 개의 자연부락 중 왜 동원마을만 장어마을로 불렀을까. 장어마을에서 '은행나무집'을 30년간 운영한 어경우(73) 씨는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단지 강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며 나머지 세 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낙동강에서 장어를 직접 잡기도 한 그는 "동원마을 사람들이 장어를 잡으며 재미를 좀 보자 아마 1970년대 중반 이후에 공창과 화정마을 사람 몇몇이 뒤늦게 장어잡이에 뛰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어 씨는 "강에서 잡아 바로 식당에서 요리했으니 얼마나 싱싱하고 맛이 있었겠냐"며 "당시 돈깨나 있는 부잣집 사람들이나 부산지역 정·재계 유명 인사들이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길도 마다하지 않고 와 먹고 갔다"고 전했다.
 장어마을의 장어구이집은 한때 16곳까지 늘어나는 등 성업을 했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굿둑이 들어서고 1991년 지하철 공사가 시작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덕천교차로에서 장어마을까지 차로 1시간은 기본이고 어떤 땐 2시간도 걸리다 보니 손님이 찾겠어요. 이후 IMF 구제금융 한파 등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더욱 위축받아 6곳 정도만 남고 거의 문을 닫았지요."
 그러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옛 영화를 뒤로한 채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런 와중에 아쉽게도 동원마을 입구에 서 있던 '금곡 장어마을'이라 적힌 입석(아래 사진)도 행방불명이 돼 버렸다.

 
옛맛을 그대로 지켜요
1970~80년대 장어마을 전성기 때 가장 잘 나가던 집은 '웅천집'이었다. 매출로 보자면 16개 장어집의 총매출액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마지막까지 장어마을을 지킨 곳도 바로 웅천집이다. 지금은 지하철 2호선 동원역과 금곡역 사이의 공창마을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다. 동원역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 걸어서 8분 정도. 옛 장어마을 자리인 이안금곡아파트에서 직선거리로 500m쯤 떨어져 있다. 식당에서 아파트가 보인다.
 웅천집(051-332-8740)에 들어서면 김해 동신어산과 백두산 등을 병풍 삼아 1300리를 내달려온 낙동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보이고, 그 뒤로 김해 대동면의 비닐하우스가 햇빛에 반사돼 반짝거린다.
웅천집에서 바라본 낙동강. 강 건너편은 김해 대동면 비닐하우스.

 웅천집은 김도균(44) 대표와 그의 누나 명숙(58) 씨가 2년 전 작고한 모친에게 장어요리 비법을 전수받아 옛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은행나무집'을 운영했던 어 씨는 "나의 누나이자 김 대표의 모친이 어머니로부터 비법을 배워 이제 조카인 명숙이가 장어요리를 하고 있으니 3대째 대물림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잠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올해로 54년쯤 됐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손님의 70% 정도가 20~30년 된 단골"이라며 "어릴 때 제가 몟아저씨몠라고 부르던 분들이 백발이 성한 지금도 찾고 있으며 일하는 아줌마 세 명 모두 20~30년 돼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라고 말했다.
 웅천집의 양념장어 구이는 옛날 방식 그대로다. 뼈와 머리를 추려내 푹 고운 육수를 식사전에 한 그릇 올린다. 양념장은 이 육수에 조선된장과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물엿 마늘 생강 매실액기스를 넣고 만든다. 장어는 초벌구이를 하며 기름을 빼면서 미리 만든 양념장을 세 번 이상 발라 이 집 특유의 맛을 낸다.

웅천집의 장어장념구이 상차림.

김도균 대표(오른쪽)와 그의 조카 그리고 북구청 공보계장.


태우지 않으면서 먹기 좋게 알맞게 구운 장어는 부드러우면서도 독특한 향이 살아 있다. 30년 전 직장을 다니다 어머니에게 장어구이법을 배운 명숙 씨는 "석쇠 한 판 단위로 구워내는 다른 집과 달리 한 모타리씩 일일이 굽고 또 구워 양념을 하나하나 골고루 바르기 때문에 비록 늦게 나오지만 맛은 아마도 최고일 것"이라고 자부했다. 장인 정신의 진솔한 손맛이 밴 완결판인 셈이다. 다른 집과 달리 양은 약간 줄었지만 20년째 1인분에 1만5000원을 고수하는 고집도 모두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다.
 웅천집에서는 예전처럼 장어 이외에 향어회와 향어매운탕 그리고 메기매운탕도 맛볼 수 있다. 하나같이 일품이다. 향어 및 메기매운탕만을 위해 찾는 사람도 꽤 있다.

■ 1970년대 낙동강은
가오리도 잡히고 장어 하루 5관씩 잡던
깨끗하고 풍요로운 생명의 강

 1970년대의 낙동강 풍경이 어땠고, 장어는 또 어떻게 잡았을까.
 낙동강에서 직접 장어도 잡고, 북구 금곡동 장어마을에서 '은행나무집'을 30년간 운영한 어경우(73·아래 사진) 씨는 "하굿둑이 조성되기 전 낙동강은 장어를 비롯해 잉어 숭어 도다리 웅어 등과 조개 등이 잡히는 그야말로 풍요로운 생명의 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2관(1관은 3.75㎏)이나 되는 아주 큰 가오리가 잡힐 정도로 수산 자원이 풍부했다"고 덧붙였다.

 장어는 주로 긴 낚시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물속으로 늘어뜨리는 주낙(연승)으로 잡았다. 미끼는 직접 잡은 지렁이나 갯지렁이를 사용했다. 장어는 강 바닥에 주로 살아 물가에서 가까운 지점은 수심 5, 6m 정도였고, 깊은 곳은 20m나 되는 지점도 있었다.
 어 씨는 "장어를 주로 잡던 어부들은 하루에 5관 정도를 잡았지만 특히 많이 잡힐 땐 하루에 10관까지 잡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찮은 밥벌이였다고 한다.
 주낙어업의 경우 보통 저녁 무렵 낚시를 던져놓고 다음날 아침 일찍 전날 표시해둔 지점으로 가 낚시줄을 당겨 장어를 건졌다. 비가 특히 많이 오거나 홍수에 버금가는 수위에 이르면 하루에 두 번 정도 낚시를 내려 장어를 건지기도 했다.
 금곡동 동원마을, 다시 말해 장어마을에선 20명 정도가 농사 대신 장어를 잡았다. 이들은 구포어촌계에 소속됐다. 이보다 북쪽인 물금이나 남쪽인 구포 쪽에서도 당시 장어를 잡았다.
 장어의 주 어획기는 봄부터 가을까지였지만 장어를 잡지 않을 땐 다른 어구를 이용해 잉어나 웅어 등을 잡았다. 특히 봄에는 숭어를 잡으러 가덕도까지 원정을 떠나기도. 낙동강이 꽁꽁 어는 겨울에는 기차를 타고 원동역에서 내려 물금 원동 쪽 낙동강에서 얼음낚시를 했다. 잉어가 이곳에서 특히 잘 잡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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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 웅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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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곤이


부산의 맛 - 부산 기장군 칠암 붕장어회

보슬보슬…꼬들꼬들 밥알 같은 '아나고회' 
씹히는 맛 회 중 최고…담백·고소함은 일품
지방·비타민A, 오메가-3 등 갯장어보다 영양 높아
기장 ~ 울산 사이 동해안 수심 350m 펄 서식
양식은 불가, 붕장어회는 모두 자연산
기장 칠암리 해안가 붕장어회 1번지
'안칼' 작업 따라 씹는 맛 조금씩 달라

"단골들은 바로 압니다. 씹히는 맛이 우선 틀리거든요. 휴가철인 여름철 어획량이 적어 어쩔 수 없이 남해안이나 전라도 지역의 물량을 받아 손님들에게 내줬더니 단박에 알고 이렇게 물어보지 않겠어요."
'이거 동해 쪽에서 잡은 것 아니제'.

일명 '아나고'로 불리는 붕장어회 1번지인 부산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 칠암횟촌번영회 이동명(53) 회장의 경험담이다. 그는 "칠암을 찾아야 비로소 붕장어회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며 "붕장어회는 대한민국에서 칠암이 가장 맛있다"고 자부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맛에 관한 한 전국 최고라고 자신있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칠암 붕장어회라는 것이다. 단지 지명도가 약간 떨어지는 부산의 맛이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지만.

갯장어보다 싸지만 영양가 높아

보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장어류는 크게 뱀장어·먹장어·갯장어·붕장어 등 네 종류. 하지만 바닷가인 부산에서조차 이 네 가지 장어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드물다. 용어 정리부터 하고 넘어가자.

우선 뱀장어. 흔히 말하는 고가의 민물장어다. 유일하게 양식이 가능하다. 먹장어는 곰장어다. 부산사람들이 흔히 '꼼장어'로 부르는 놈이다. 주둥이가 길고 입이 큰 갯장어는 여름철이 제철인 '하모회'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붕장어는 흔히 말하는 '아나고'로 회나 구이로 먹는다.

이렇게 볼 때 장어류 중 회로 먹는 것은 갯장어와 붕장어뿐이다. 고급 횟감으로 통하는 갯장어(하모회)는 경남 통영 고성, 전남 여수 등지가 주산지로 가격은 붕장어보다 훨씬 비싸지만 영양성분은 되레 붕장어가 더 빼어나다. '생선회 박사'로 유명한 부경대 식품공학과 조영제 교수는 "지방 함량을 비롯 오메가-3(DHA+EPA), 비타민A는 붕장어가 갯장어보다 훨씬 더 많아 혀로 느끼는 고소함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꼬들꼬들·고소·담백, 독특한 맛
   
해운대~송정~대변~일광해수욕장을 지나 만나는 기장군의 조그만 포구 칠암(리). 이곳에는 해안가 1㎞를 따라 횟집만 30여 개나 펼쳐져 있다. 모두 붕장어회를 전문으로 한다. 국내 최대 붕장어회 단지다.

칠암 해안가를 따라 펼쳐진 붕장어횟집.

칠암 앞바다. 경치가 수려하다.


칠암 해변가에 펼쳐진 난전.

인심이 넉넉히 아주 저렴하다.


칠암횟촌 일대의 맛은 사실 '오십보백보'. 횟집 주인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한다. 이 중 칠암횟촌번영회 이동명(53) 회장이 운영하는 수중횟집(051-727-1697)을 찾았다. 대로변인 바닷가가 아니라 약간 들어간 골목에 위치하다 보니 단골들만 찾는 숨은 횟집이다. 안주인 한말연(52) 씨는 "전망이 좋지 않다 보니 더 많은 양과 친절한 서비스로 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궁금했다. 튀밥처럼 먹음직스러운 붕장어회가 어떻게 만들어져 나오는지. 한 씨는 한참 고민 끝에 주방을 개방했다.

껍질 벗기고, 안칼 작업 후 세절기에 넣기 전.

생선회 세절기.

순식간에 이뤄진다.


팔딱거리는 붕장어를 기절시킨 후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다. 여기까지는 어디서나 똑같다. 이후 한 씨는 길게 칼집을 두 번쯤 넣으며 "이 작업을 여기선 '안칼'이라고 하는데 칠암 붕장어회가 부드러우면서 씹히는 맛이 빼어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칠암만의 독특한 작업인 것이었다. 뼈는 보통 제거하지 않지만 노약자와 아이들이 있을 경우나 손님이 특히 원할 경우 제거한다고 했다.

기본 작업이 끝나면 붕장어를 두 동강 낸 후 생선회 세절기에 넣는다. 뼈를 제거한 것은 한 번, 제거하지 않은 것은 두 번 내린다. 순식간에 이뤄진다. 수북히 쌓인 붕장어회는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 물로 서너 차례 헹군 후 마지막은 반드시 정수기물로 깨끗이 씻었다. 이후 부드러운 망에 넣고 탈수기로 돌린다. 뼈를 제거한 것은 뼈와 살 사이의 공간이 많아 8분 정도, 뼈를 뺀 것은 5분 정도 돌렸다.

세절기를 통과한 아나고회.

물로 서너 차례 헹군다.

부드러운 망에 넣고 탈수기에 돌린다.


작은 소쿠리에 담겨져 나온 붕장어회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었다. 콩고물을 넣은 양배추에 초장을 적당히 섞은 후 붕장어회를 넣고 건성건성 비빈 후 쌈을 싸먹는다. 초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야채의 숨이 빨리 죽고, 붕장어회를 넣고 너무 많이 휘저으면 회의 질감이 떨어져 회 고유의 제맛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칠암의 특산품인 잎마늘(상추마늘)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소쿠리에 담겨줘 나오는 칠암 붕장어(아나고)회.

기본 상차림.

아나고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초장.

수중횟집이 유황을 넣고 직접 키운 야채.


그럼 맛은. 고소하며 담백하고,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먹는 기쁨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붕장어회를 두고 누가 봄도다리가 최고라고 했는지. 그 사람은 아마도 붕장어회를 먹어 보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양념구이용 붕장어의 작업은 달랐다. 등줄기에 길게 칼을 댄 후 내장과 뼈, 머리를 각각 제거했다. 수중횟집의 양념구이는 독특하게 황기 천궁 등 12가지 한약재를 넣은 한방양념구이였다. 가격에서 부담스러운 민물장어구이와 함께 놓고 구별해 보라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다. 별미 중 별미다. 입에서 녹는 것은 민물장어만이 아니었다.

구이용으로 장만한 붕장어.

수중횟집의 한양 양념구이.


칠암 붕장어회, 그것이 알고 싶다
  
붕장어는 모두 자연산이다. 양식산이 없다는 것. 칠암사람들은 "이곳에서 19마일쯤 떨어진, 기장과 울산 사이의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수심 350m 펄층에서 서식하고 있는 사실만 알 뿐 어민들도 붕장어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립수산과학원 진해내수면양식연구센터 김대중 연구사는 "현재 일본의 한 연구소가 붕장어의 양식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후 "국내 연구진도 붕장어의 양식과 관련해 연구비 등 주변 여건만 성숙되면 가능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획량이 충분한 데다 무엇보다 타산성이 없기 때문에 연구를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붕장어회는 탈이 자주 난다. 구토 등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나는 이른바 '아다리'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한보용(66) 칠암어촌계장은 "지난 1970, 80년대에는 이 같은 현상이 자주 발발해 식당별로 보험까지 가입하는 등 심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붕장어 피 속의 약한 단백독소가 구토 설사 등의 주원인"이라며 "지금은 식당별로 붕장어를 장만할 때 이 부분을 주의하고 있으며, 혹 먹을 때 붉은 핏대가 보이면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독소는 가열하면 분해되므로 구이를 먹으면 절대 탈이 나지 않는다.

붕장어회는 언제부터 탈수기로 물기를 제거하고 콩가루를 곁들인 야채와 함께 먹었을까. 수중횟집 안주인 한 씨(바로 위 사진)는 "둘 다 1990년 중반부터"라고 말했다. 양배추는 특히 붕장어회의 소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붕장어의 내장은 별미라고 하던데. 사실이다. 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오면 해줄까 판매는 하지 않는다. 내장탕 내장구이모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고 한다.


한보용 칠암어촌계장 인터뷰

 "붕장어는 칠암이 원조, 올해 10월 붕장어축제 개최"  
 
한보용(66·아래 사진) 칠암어촌계장의 삶은 칠암 붕장어회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장 장안읍 월례리에서 태어나 3세 때 이웃 일광면 칠암(리)으로 이사와 군대 3년을 빼곤 지금까지 칠암에서 붕장어회와 함께했다. 젊었을 때 15년간 붕장어를 직접 잡으러 나가기도 했던 그는 이후 배는 동생에게 물려주고 칠암에서 용당횟집(051-727-0560)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현재 칠암과 기장읍 연화리, 일광면 학리에서 각각 붕장어를 잡고 있지만 원조는 칠암이라고 강조했다. "1950, 60대엔 1t도 채 안 되는 돛단배를 몰고 연승(주낙)으로 붕장어를 잡아 일본으로 바로 수출했지요. 이후 1965년부터 정부 융자로 동력선을 마련했지만 이상하게도 붕장어가 잘 안 잡혀 대부분의 어민들이 고데구리 어업으로 돌아섰어요. 불법이었죠."

하지만 1980년 정부에서 사업 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줘 고데구리 불법 어업 대신 다시 붕장어를 합법적으로 잡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연화리에서 붕장어를 가장 먼저 잡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연화리는 1975년쯤 통발 배로 붕장어를 잡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물론 연승 배가 아닌 통발 배로는 먼저 붕장어를 잡기 시작했지만 연승, 통발 배를 통틀어 붕장어를 잡기 시작한 것은 엄연히 칠암이라고 했다.

"지금은 붕장어를 이웃 학리에서 가장 많이 어획하고 있어요. 칠암이 18척, 연화리가 30척, 학리에서 40척의 붕장어 배가 있지요." 하지만 한 계장은 칠암이 붕장어의 가장 큰 집산지라고 했다. 마치 울진 등 다른 지역의 배들이 대게를 더 많이 잡고 있지만 유통망이 빼어나 영덕이 대게로 유명해진 것처럼 지금의 칠암은 비록 배가 적어 붕장어 어획량이 적지만 가장 소비가 많아 붕장어회의 중심으로 여전히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붕장어축제는 칠암과 연화리에서 매년 돌아가며 개최한다. 올해는 오는 10월 칠암에서 열린다.

Posted by 곤이

부산의 맛 - 동래파전

싱싱한 파·해산물 주재료…농·어업 동시에 가능한 부산 지리적 특성이 낳아
유래 밝힌 문헌 없어…조선시대 고관 술안주에서 장터 등 서민 음식된 듯
부산 동래구청 주자창 인근 '동래할매파전'집 4대째 70여 년 전통 이어
봉사단체 동래파전연구회…표준화된 조리법 연구 등 관광자원·브랜드화 앞장

4대째 7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부산 동래구청 인근 '동래할매파전'.
 
"이 전의 이름이 뭐죠. 밀가루로 얇게 부쳐내는 일반 파전과는 달리 파가 엄청 많이 들어 있어 두툼하고 푸짐하네요. 간장이 아니라 독특하게 초장 소스를 찍어 먹네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게 계란 등이 약간 더 바삭하게 구워지면 더 좋을 듯 하네요."-충북 충주시 거주 이경진(여·87)

"대개 전 종류는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지만 동래파전은 막걸리 등 우리나라 전통주와 궁합이 잘 맞아 남자들도 아주 선호할 것 같은데요."-경남 창원시 거주 최정석(57)

"굴 홍합 새우 등 싱싱한 해물과 야채가 들어가는 동래파전은 영양가가 풍부하고 양도 푸짐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인천 거주 김선미(여·58)

동래파전의 상품화 마케팅 이젠 절실   
 
 지난해 12월 말 부산시와 부산시관광협회가 남해안 관광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의 3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남해안 크루즈 선상 팸 투어에서 부산의 대표 향토 음식인 동래파전을 시식한 후 나온 다른 지역 참가자들의 반응이다.

당시 동행했던 동래구청 문화공보과 김선희 씨와 부산시청 관광진흥과 김귀옥 씨는 "동래파전이 부산의 대표 음식이긴 하지만 전국적인 지명도가 약해 신통찮은 반응이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이 쏟아져 관광상품으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역시 크루즈 팸 투어에 함께 참석한 부산발전연구원 우석봉 박사는 "흔히 관광의 3대 요소라 불리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만으로 볼 때 부산은 먹을거리 부문에서 가장 취약해 하루빨리 시 차원에서 부산의 대표 먹을거리를 선정해 국내외를 대상으로 홍보마케팅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해안 관광 활성화 방안을 위한 부산·경남·전남 등 3개 시·도 공동 용역을 맡고 있는 우 박사는 경남 전남 지역의 연구원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에서 부산의 먹을거리의 빈약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전남도의 경우 기본적으로 시·군을 대표하는 음식이 너무 많아 어떤 음식을 대표 음식으로 선정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으며, 경남도는 지난해 난중일기 등 옛 문헌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 작업을 거쳐 '이순신 밥상'을 복원해 관광상품으로 대히트를 치고 있어요. 하지만 부산은 동래파전이라는 괜찮은 콘텐츠가 있어도 이를 응용해 상품화하는 전략조차 아직 없어요."

향토성을 가장 잘 간직한 음식

파가 주재료인 동래파전은 부산의 음식 중 가장 지역성과 향토성을 잘 간직한 음식이다. 이는 재료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파 미나리 대합 홍합 굴 새우 쇠고기 계란 멥쌀 및 찹쌀가루 등과 맛국물을 내는 재료인 멸치 다시마 띠포리 등은 하나같이 부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동래파전은 어업과 농업이 동시에 가능했던 부산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낳은 자연발생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래파전은 언제부터 먹어온 음식일까. 아쉽게도 이에 대한 대답을 흔쾌히 해주는 문헌도 없을 뿐아니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도 거의 없다. 동래파전의 유래가 일부 알려져 있는 이유는 구전이나 당시의 시대적 정황으로 추측했을 뿐이다.

원로 소설가 최해군 선생은 "동래가 조선시대 도호부 때 대일 외교와 군사상의 요지로 조정 고관들의 왕래가 잦아 그들을 접대하기 위한 술자리에서 안주로 나오던 파전이 점차 발달해 지금의 동래파전으로 정착된 것이 아닐까 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고관들의 술자리에 동석했던 동래 관기들이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서 점차 여염집에서도 동래파전이 재현되고, 이것이 다시 널리 퍼져 동래장터에서 서민들의 음식으로 변모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못했던 시대를 거치면서 동래파전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동래 기생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동래할매파전'이 동래파전의 원조
   
부산에서 동래파전을 설명하기 위해선 동래구청 앞에 위치한 '동래할매파전'을 빼놓을 수 없다. 380년 된 아름드리 팽나무가 바로 옆에 기품있게 서 있는 이 집은 김정희(47) 대표의 시증조할머니가 동래파전집을 연 1930년대 이후 시할머니(1986년 타계), 시어머니(1995년 타계)를 거쳐 지금까지 4대째 70여 년간 전통 방식으로 고스란히 대물림해오고 있다. 김 대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1970대 초까지 '제일식당'이란 상호를 사용하다 이후 지금의 '동래할매파전'으로 바뀐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부산의 민속음식점 1호점답게 인테리어가 고풍스럽다. 한지를 바른 여닫이 문에 그릇 하나 수저 하나까지 세세한 신경을 써 정감이 간다. 맛은 어떨까. 물기가 없이 부치는 일반 파전과 달리 쌀가루(멥쌀 및 찹쌀)를 갈아서 사용해 찰진 맛을 우선 느낄 수 있다. 해산물의 시원한 맛과 파의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이 어울려 한마디로 '봄맛'이다. 조리 과정에서 두꺼운 파를 골고루 익히기 위해 뚜껑을 덮어놓은 덕분에 파의 향기까지 은은하게 배어난다. 노란 호박동동주와 분홍빛의 오미자동동주를 한 잔씩 걸치니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다.

식사 중 김 대표의 희망 섞인 한 마디가 귀에 꽂힌다. 최근 외국인과 젊은층이 많이 찾는 등 손님이 예전에 비해 약간 늘고 있다고 한다. 동래파전이 슬로푸드이며 웰빙 음식인 것을 뒤늦게 알았던 것일까. 하지만 이들은 전통 방식인 초장 대신 간장을 찍어 먹는다고 한다. 여기에 외국인은 한 입 크기로 잘라달라고 요구하고, 일본인은 4등분 정도로 미리 잘라 나왔으면 좋겠다고 주문한다.

1995년부터 '동래할매파전'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김 대표는 "전통은 전통대로 고수해야 겠지만 새로운 수요자들의 요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고민이 많다"며 "앞으로 동래파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매년 열리는 '동래읍성축제' 때 봉사단체인 동래파전연구회가 동래파전을 재료값 정도로 판매하고 있다.
'동래파전연구회'는 동래읍성축제 때 동래파전 시연도 한다.
'

동래파전연구회를 아시나요   
 
2004년 11월 동래구청은 '동래파전연구회'라는 단체를 발족시켰다. 동래파전의 맛을 널리 알리기 위해 표준화된 조리법은 물론 역사적 유래와 영양학적 가치 등을 연구해 동래파전을 관광자원 및 브랜드화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자원봉사단체이다.

현재 회원은 30명. 대부분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전업 주부로 구성된 이 단체는 지금까지 매월 1~2회 동래문화회관에 모여 직접 재료를 구입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동래파전을 연구한 끝에 2006년 나름대로 표준화된 조리법을 완성했다.

회원들은 이를 바탕으로 매년 개최되는 동래읍성역사축제와 대한민국 축제박람회 때 난전을 펼친다. 이들은 전국의 관광객들이 보는 앞에서 동래파전을 부쳐 재료비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도 하는 한편 관광객들이 직접 동래파전을 부쳐보도록 하는 등 동래파전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뿐만 아니라 관내 무의탁 노인들에게 식사 대신 동래파전을 직접 부쳐 대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절미 김치 청양초를 곁들인 퓨전 동래파전을 개발해 널리 알리고 있다. 이런 연유로 회원들 중 김정숙 씨가 동래구청 인근에 '초암'이라는 동래파전집을 열어 전통 동래파전과 함께 퓨전 동래파전을 판매하고 있다.

동래파전연구회 회장인 동부산대학 김소미 호텔외식조리과 교수는 "앞으로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동래파전을 연구해 브랜드화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로 소설가 최해군 선생과 동래파전

- "동래고보 입학식땐 학교 앞에 아낙네 모여 솥뚜껑으로 파전 지져대"
   
취재 당일 '동래할매파전'집에 원로 소설가이자 '부산 역사 지킴이'로 불리는 최해군(85·아래 사진 오른쪽, 왼쪽은 '동래할매파전' 김정희 대표) 선생이 동행했다. 누구보다도 동래파전과 관련된 일화를 많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펴낸 회고록 '문단 이야기'(해성)에서도 그는 동래파전 이야기로 일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동래 일대에는 파전이 널리 지져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래고의 전신인 동래고등보통학교 입학식 때는 학교 앞에 솥뚜껑을 거꾸로 해서 파전을 붙이는 아낙네들이 난전을 펼쳐 입학식에 오는 손님은 파전 한 넙떼기와 막걸리 한사발이면 점심 없이 배부름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동래고보의 입학식은 4월 1일. 이 즈음이면 동래파전의 주재료인 조선파의 맵싸한 맛이 오르고 미나리꽝에도 새순이 돋아 근처 바다에서 나온 싱싱한 홍합 굴 등과 알맞게 버무려 지지면 1년 중 최고의 맛을 보였다고 한다. 최 선생이 동래고 교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후반기의 회식 땐 주로 파전집으로 갔다. 당시 파전집으로 유명한 곳은 '용각' '수정집' '이화장'과 일명 '할매집'으로 불리던 '제일식당'.

최 선생은 "당시 '제일식당'의 할매는 추강(秋江) 여사로 불리는 60대였는데 깔끔하면서도 교양이 있어 문인들과 교수 등 지식인층이 단골로 자주 찾았다. 그 추강 여사가 지금의 '동래할매파전' 김정희 대표의 시할머니"라고 말했다. '동래할매파전' 집이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식당임을 최 선생이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때 단골들의 면면을 보면 전 국회의장 곽상훈, 전 부산교육대학장 김하득, 수필가 박문화 , 향파 이주홍, 전 부산대 교수 박지홍, 전 부산교육대학 교수 이주호 씨 등이었다. 특히 추강 여사는 향파 선생과 죽이 맞아 향파 선생이 오면 '아이고 향파 선생님'하고 온후한 기품으로 환대를 했다. 이어 동래파전과 막걸리를 상으로 차린 뒤 나머지 일은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자리를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는 향파의 해학과 추강의 응수가 어우러져 밤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최 선생은 '동래할매파전'집에서 추강 여사의 손자며느리인 김정희 대표가 만든 동래파전을 맛보면서 당시의 맛과 약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의 더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 입맛이 변했는지 하여튼 당시 추강 여사의 파전은 산뜻한 맛이었다"며 잠시 40여 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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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과 사람' 8명 완연한 봄 맞아 경주 토함산으로 번개출사
- 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아름다운 자태 렌즈에 담아

- 노란 꽃다지와 첫인사 후 멸종위기 노랑무늬붓꽃 감상
- 각개전투하듯 다양한 자세로 자기만의 촬영모드 돌입

- 야생화 특성·꽃말 등 꿰뚫어 회원 모두 움직이는 식물도감
- 영남알프스·무룡산·노자산 등 부울경 대표적 출사지도 섭렵













번개 출사지는 경주 토함산(745m)이었다. 일반적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고 있고 하늘에 제를 지내던 신라 5대 영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토함산은 산꾼들에게는 단석산 남산과 함께 경주의 3대 명산이자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해맞이 명소로 인식돼 있다.

반면 야생화 마니아들에게 토함산은 산나물과 함께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오랜 친구와도 같은 푸근한 육산으로 사랑받고 있다. 같은 산이라도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종족 보존 위해 더욱 많이 핀 야생화
 
부산 근교의 대표적 야생화 출사지로는 정자항을 품은 울산 무룡산, 양산 천성산 상리천, 고성 문수산 늘앗골, 거제 노자산과 영남알프스 가지산 신불산 등이 있다. 이 중 왜 토함산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이 시기에 가장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도처에 고개를 내밀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완연한 봄이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봄바람 속에 새치름함이 남아있었다. 자연스럽게 날씨와 야생화의 관계가 화두로 먼저 떠올랐다.

'꽃과 사람' 김병권 회장은 "올해는 날씨 덕분에 되레 일부 야생화는 더 많이 피었다"고 운을 뗐다. 약간 귀를 의심했다. 분명 올해는 이상 저온과 잦은 강수에 따른 일조량 부족 등으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고 있어 야생화 또한 예외가 아닐텐데.

김 회장은 오래전 김영삼 정부 집권 첫해를 회상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엔 이른 봄부터 7월까지 가물었어요. 야생화 마니아들은 아마도 거의 꽃이 피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신불산에 올랐는데 예년과 달리 키 작은 철쭉이 신불산 평원을 가득 메우고 있지 않겠어요.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철쭉이 종족 보존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운 거지요. 죽기 전 소나무가 가지마다 솔방울을 가득 달리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올해 야생화도 당시와 유사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올봄의 경우 이상 저온 등으로 야생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각시붓꽃이나 반디지치 같은 일부 야생화는 급증했다"고 말했다. 통상 야생화는 한 해 걸러 많이 피고 적게 피고를 반복하는 해걸이를 한다. 지난해 많이 핀 각시붓꽃이 상대적으로 적어야 하지만 역시 종족 보존을 위해 많이 핀 것이라고 한다. 비록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정도 늦게 만개했지만, 덕분에 마니아들은 신이 났다. 손톱만 한 크기의 조그만 야생화가 지구 이상 기온의 중요한 지표가 될 줄이야. 야생화 보존. 더 나아가 생물종 다양성 보존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경주 토함산은 야생화의 보고  
 
이날 번개 출사에 나선 회원은 8명. 여자 셋, 남자 다섯. 얼핏 적은 듯하지만 야생화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인터넷 동호회가 늘 그렇듯 그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님' 자를 붙여가며 닉네임을 사용했다. 근교인 범의귀 큰바우 천지 지음 그림자 해피맘 그리고 모만호가 그들. 맨 후자는 닉네임 같지만 본명이다. 그는 동래원예고 교사다. 오래전 가입했지만 출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전문가 수준의 회원들이 잘 모르는 야생화를 해박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 토함산의 모습은 파스텔톤으로 분칠한 화사한 신부 같다. 수종에 따라 연두색 잎이 농담을 달리하며 푸름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중 이때의 신록이 가장 예쁘다. 그 모습에 반해 한동안 멍하니 서 있자 야생화꾼들이 한마디 던진다. "이 기자, 오늘은 허리를 숙여야 큰 성과가 있다구."

그랬다. 수줍은 듯 고개를 내민 야생화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다가서야 비로소 야생화는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나눠주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토함산 시부걸 코스는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 말이면 변산바람꽃을 비롯 복수초 가지복수초 노루귀(청색 분홍색 흰색) 올괴불나무 등을 볼 수 있는 데다 특히 이 시기에는 노랑무늬붓꽃 애기송이풀 등 멸종위기 및 희귀식물이 적지 않아 봄 야생화 순례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 또한 부드러워 야생화 산행지로 금상첨화다.

노란 꽃다지가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첫인사를 한다. 농부의 눈에는 한낱 잡초에 불과하지만 군락을 이룬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산괴불주머니도 지천이다.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리는 제비꽃도 반갑게 인사한다. 흔히 보리고개 때인 4월 북방 오랑캐가 쳐들어올 때 한참 펴 오랑캐꽃이라 명명됐다 전해오지만 모 선생이 꽃을 따 보여주며 꽃잎 뒤의 꿀주머니가 오랑캐의 뒤통수를 닮아 오랑캐꽃이라고 설명했다. 하찮아 보이는 풀꽃 하나에도 생김새에 따라 그럴듯한 전설이 숨어 있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노랑무늬붓꽃 앞에서 모 선생의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식물은 크게 환경부의 멸종 위기 식물 1급(8종) 2급(56종), 산림청의 희귀식물(217종) 후보종(44종)으로 지정돼 있어요. 노랑무늬붓꽃은 멸종 위기 2급에 해당되지요."

산중 회의도 잠시 열렸다. 회원 '지음' 씨가 늘 보는 모습과 약간 달라 어떤 천남성인지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장희빈의 사약 원료로 알려진 천남성은 쉬운 것 같지만 종류가 많아 의외로 어렵다고 한다. 다음 날 '지음' 씨는 홈페이지에 문제의 사진을 올리면서 둥근잎천남성(아래 사진)이라고 못을 박았다. 잠시 농담 하나. 여성들은 가급적 천남성을 홈페이지에 올리지 말지어다. 발음이 '첫남성'이라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란다.

회원 '범의귀'는 비록 꽃은 피지 않았지만 가늘게 자란 잎만 보고 애기나리라고 했다. '야생화 하는' 사람들은 꽃이 피기 전과 지고 난 후의 잎을 봐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각개전투하던 회원들이 모처럼 한곳으로 모여든다.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 애기송이풀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기 때문. 중부 이남에서는 보기 힘든 '귀하신 몸'이라 다들 배낭을 내려놓고 본격 촬영 모드에 들어갔다. 새를 닮은 진분홍빛 꽃도 앙증맞지만 애기송이풀을 완벽하게 담으려는 회원들의 다양한 자세가 가관이다. 앉아 쏴, 엎드러 쏴, 쪼그려 쏴는 기본이고 요가를 응용한 이상야릇한 폼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바세계에서는 내외할 법도 한 관계지만 산속 야생화 앞에선 몸이 밀착되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등이나 엉덩이 무릎에 흙이 묻는 것은 보통이었다. 야생화의 힘이었다.

"회원들의 몸이 어쩌면 저렇게 유연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40분쯤 뒤 누군가 '갑시다'라고 외치자 아쉬운 듯 자리를 뜬다. 애기송이풀을 두고 회원 '근교인'은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린 후 진분홍빛의 정열적인 새를 닮았다며 '불새꽃'(아래 사진)이라 부르길 강력히 주장한다고 적어 놓았다.

이름 그대로 족도리를 닮은 족도리풀은 누군가 촬영을 위해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해놓았다. 잠시 헤어졌던 모 선생이 "이거 한번 드셔 보세요"라며 뭔가를 하나 건네준다. 입에 넣었더니 약간 새콤한 맛이 났다. 큰괭이밥으로, 강원도 태백에서는 '새콤이'라고 부른다며 우리 산야에선 알고 보면 먹을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었다.

날개현호색도 만났다. 소박하고 은은한 존재감.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런 것이 아닐까. 모 선생은 "자세히 보세요. 꽃자루 뒤에 붙은 턱잎이 애기 손을 닮았지요. 현호색은 제비꽃처럼 변종이 많아요. 그래서 어려워요"라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회원 '큰바우' 씨는 "공부를 안 하면 여기서는 왕따가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25년간 골프도 치고 등산도 해봤지만 야생화만큼 재미있는 취미가 없다"며 "나이 육십이 넘어 뒤늦게 야생화를 알게 된 것이 내 인생의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의 야생화 사랑은 끝이 없었다. 고양이 눈을 닮은 선괭이눈과 상괭이눈, 산자고와 앵초, 각사붓꽃, 털제비꽃 등등. 그들은 예외 없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일일이 렌즈에 담고 또 담았다. 여전히 등이나 엉덩이에 흙을 묻혀 가면서.

각시붓꽃.

선괭이눈.


덩굴꽃말이.

산자고.



'꽃과 사람' 번개 출사 회원들은 간단한 점심 식사 후 오전 작업이 성에 안 찼던지 귀향길에 울주군 연화산을 찾았다. 분꽃나무가 향기를 뿜고 있고 앵초의 대규모 군락지가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곳은 또 북쪽에만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 홀아비꽃대와 남쪽에만 서식하는 걸로 알려진 옥녀꽃대가 동일 장소에서 서식하고 있는, 아마도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다. 그들의 정열과 애착에 경의감마저 느껴진다.


야생화는 정보 싸움, 화무십일홍을 잊지 마라

'꽃과 사람' 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야생화는 정보와의 전쟁이라고 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가장 뼈에 사무치는 사람이 바로 야생화꾼들이기 때문이다.

"10여 일 정도 바쁘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특정 꽃을 못 보고 지나가면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되지요. 또 귀한 꽃이 피는 장소와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동호회 활동을 통해 정보를 알 수 있지요."

야생화꾼들은 또 아주 부지런해야 한다. 풍경도 그렇지만 야생화도 통상 해 뜨고 1시간, 해 지기 전 1시간 즈음, 촬영하기 가장 좋다고 한다. 해서 시간을 맞추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하지만 모든 야생화가 그러한 룰에 맞게 피고 지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은 햇빛을 제법 받은 오전 10~11시쯤 만개하고, 산자고나 깽깽이풀 만주바람꽃은 날씨가 화창한 오전 11시~오후 2시 꽃을 피운다. 그래서 야생화꾼들은 그 같은 부단한 작업을 두고 '운팔기이'의 외로운 작업이라고 한다.

야생화를 알게 되면서 회원들은 자연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대자연 속에서 그 가치를 몸으로 깨닫는 작업이야말로 진정 자연친화적 삶이 무엇인지, 나아가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것 같아요."

한 회원은 이렇게 덧붙였다. "수년 전 할미꽃 한 송이가 5000원쯤 한 적이 있었어요. 할미꽃이 돈이 된다고 하니 무덤 위의 모든 할미꽃이 일순간 사라져 버리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지요. 지금은 할미꽃이 많아요. 할미꽃을 화분에 옮겨놓아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나아가 산에 피는 야생화는 아파트 화분 속에 오면 금방 죽는다는 사실도 알았어요."

인터넷 야생화 사진 동호회 '꽃과 사람' 이야기를 더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hung.kookje.co.kr/471

Posted by 곤이


경주 토함산 시부걸계곡 초입에서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첫인사를 하는 노란 꽃다지 군락지에서 '꽃과 사람' 회원들이 잠시 포즈를 취했다.

앵초군락지에서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꽃과 사람' 회원들.

찬바람이 휘몰아치던 지난 2월 초 부산시립미술관에는 작은 아우성이 일었다. 평소 한산하던 평일임에도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진원지는 알고 보니 듣도 보도 못한 조그만 동호회의 야생화 사진전이었다. 같은 시기 이곳에는 물방울 화가 '김창렬 특별전'과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배병우 특별전', '신옥진 기증 작품전'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분명 작은 반란이었다.

 문외한들에게는 하고많은 사진전 중의 하나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시회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제법 의미 있는 행사였다. 지난 2006년 부산을 근거지로 의기투합해 문을 연 '꽃과 사람'(flowersaram.com)이라는 인터넷 야생화 동호인들이 바로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 중심의 야생화 동호회인 '인디카' '야생화클럽' '야사모' 등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정기 출사'나 '번개 출사' 등이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져 활동에 한계가 있었다. 사실상 '들러리'였다.

온라인상으로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그들은 주체적인 활동을 원했다. 영남지역을 모태로 한 야생화 동호회를 갈구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그들은 자체 모임을 갖고 야생화에 목마른 마니아들을 규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홈페이지도 만들고 정기 및 번개 출사도 자주 떠났다. 카메라에 담아온 야생화는 즉시 홈페이지에 올렸다. 자료가 점점 쌓이면서 회원과 홈페이지 방문객도 늘기 시작했다.   

'꽃과 사람'의 현재 회원은 411명. 부산을 비롯해 경북 경주 포항, 경남 마산 창원 김해 양산 등 영남지역의 회원들이 주류를 이룬다. 산꾼에서 야생화꾼으로 전향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40년 산꾼으로 살다 최근 야생화에 흠뻑 빠진 60대의 한 회원은 "오랜 기간 등산을 하며 무심코 지나쳤던 조그만 야생화가 큰 행복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아 천만다행"이라며 "야생화는 한마디로 미지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야생화에 대한 그들의 예찬은 계속 이어졌다.

"꽃 이름과 생태 그리고 꽃과 관련된 사연을 하나씩 알게 될수록 경이로움이 아주 커지지요. 미지의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아 집에 와서 하나씩 살피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당시 숲 속의 향기와 분위기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어요. 가장 잘된 야생화 사진을 액자에 담아 거실에 걸어두는 그 기분을 누가 알까요."

'꽃과 사람' 김병권 회장은 "자연의 본성을 닮은 하나의 소우주인 야생화를 찾아 나서는 작업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생태프로그램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자연 보호와 함께 인간 본연의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야생화의 즐거움과 신비로움을 만끽해보기 위해 '꽃과 사람'의 번개 출사에 따라붙었다. 모처럼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가로운 일요일이었다.

날개현호색.

노랑무늬붓꽃.


분꽃나무.

앵초.



아래 사진은 지난 2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제1회 '꽃과 사람' 전시회 모습입니다.




'꽃과 사람' 두 번째 이야기를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hung.kookje.co.kr/472








 

Posted by 곤이

부산의 맛 - 구포국수

-후루루룩~ 총총 썬 '땡초'의 마력은 덤
- 잔치·서민음식 대명사
- 일제 강점기부터 구포역 곡물하치장 덕 제분·제면업 발달
- 가내공장 30곳 성황…옥상·마당 곳곳 면 말리는 진풍경도
- 현재 구포엔 가내공장 1곳 뿐
- 진한 멸치육수에 말아 단무지채 부추 고명 올려

 국수는 서민의 음식이다. 장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마솥에서 퍼올린 육수에 만 국수 한 그릇이면 시름도 잠시 잊는다. 또 잔치음식을 대변한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 총각에게 "언제 국수 먹여줄래"라고 묻는 것은 국수가 바로 잔치음식의 대명사로 굳어졌음을 의미한다.

불가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 부른다. 스님들의 미소라는 의미로, 늘 밥만 먹는 스님들의 유일한 별미가 바로 국수였기 때문에 국수 생각만 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그러고 보니 국수는 오랫동안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먹을거리였다. 해서, 지방마다 향토색 짙은 국수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정선 콧등치기국수, 제주 고기국수, 담양 선지국수 등등. 하나같이 우리네 삶과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부산에는 구포국수가 있다. 타 지역의 여느 국수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지명도는 꽤 높은 편이다. 6·25한국전쟁 기간 푸짐한 양과 쫄깃한 면발로 많은 피란민의 배고픔을 달래줘 깊은 인상을 심어준 때문이다. 구포국수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 힘입어 지난 1980년대까지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했지만 1990년대부터 식문화의 급격한 변화와 대기업의 진출로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부산시 홈페이지의 '부산의 별미' 코너에도 이제 구포국수라는 음식은 찾아볼 수 없다.

관의 지원도 끊겨…명맥만 겨우 유지

 왜 구포국수인가.

일제 강점기 때부터 구포역 인근엔 곡물하치장이 있어 제분업과 제면업이 발달했다. 남선곡산과 영남제분이 대표적 공장. 구포 일대는 또 낙동강 하류의 염분 섞인 바다 바람이 연신 불어대 국수를 자연 건조시키기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구포장을 끼고 원료 구입의 용이함과 자연 조건 등을 두루 갖춘 이곳은 국수공장이 들어서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셈. 자연스럽게 가내 국수공장이 한 두 곳 들어섰고, 이러한 공장이 차츰 잘 되니까 여러 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름은 자연스럽게 지명 이름을 따 구포국수로 명명됐다.

구포에서 국수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40년대 초반. 구포시장에서 '이가네 구포국수'를 운영하는 이원화(49) 대표는 "선친으로부터 구포국수 공장이 처음 만들어진 시점은 대략 1940년대 초반이었으며, 우리 집은 1945년 국수공장을 처음 시작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구포에서 국수공장이 가장 많았을 때가 1960~70년대로 아마 30여 곳은 됐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대부분 가내공장이어서 옥상이나 마당에서 국수를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포국수 공장은 이후 1980년대 들어 기울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부터 고임금과 대기업의 진출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부산 북구 구포 일대의 구포국수공장은 구포연합식품 단 하나뿐. 하지만 구포국수라는 이름으로 국수를 만드는 공장은 경남 김해 등 부산 외곽에 몇 곳 더 있다. 김해에서 구포국수를 만드는 업자들은 오래 전 구포에서 국수를 만든 사람이라 제품에선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구포국수라는 명칭과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 지난 1988년 모 국수공장이 상표등록을 해 다른 업자들이 명칭 사용을 못하게 되자 소송을 걸었다. 결국 재판부는 '구포국수는 구포의 명물로 역사성이 있는 명칭이므로 단독 소유할 수 없다'고 판시해 구포국수는 만인의 상표가 돼버렸다.

부산 동래구청이 동래파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듯 북구청도 구포국수와 관련, 관심을 보이고 있을까. 지금으로선 아쉽게도 없다.

북구청은 1998년 구포국수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 제1회 구포국수 축제를 연다고 널리 알렸지만 결국 예산 문제로 무산된 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북구청 관계자는 "구포국수는 이제 지명만 구포가 들어갈 뿐 실제론 북구만의 특화된 상품이 아니라 부산 전역에 널리 분포돼 있는 데다 예산마저 부족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쫀득쫀득 씹히는 면발과 진한 육수의 그맛

부산엔 구포국수집이 제법 있지만 구포국수를 제대로 하는 집은 몇 집 안 된다.

남산동 구포촌국수. 육수는 직접 부어 먹는다.

현재 금정구 남산동 외대운동장 입구 맞은편 '구포촌국수'가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집이다. 그래서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구포촌국수(051-515-1751)의 김향이(47) 대표는 "김해 '대동할매국수'를 하는 그 할매와 비슷한 시기에 인근에서 30년 동안 구포국수를 삶은 할매가 저의 친할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국수는 김해 주촌의 한 구포국수 공장에서 특별 주문한 것만 사용한다. 좋은 밀가루를 사용해 가격은 일반 제품의 배. 멸치는 보름에만 잡혀 특히 맛있다는 오사리멸치만 쓴다.

육수에는 비법이 있었다. 그냥 멸치를 넣는 게 아니라 건강이 안 좋은 할머니가 집에서 버섯 다시마 양파 대파 등을 말려 손수 빻아 만든 가루를 섞는다. 그것도 비율이 정해져 있단다. 30년 노하우가 숨은 최고급 육수에 최고급 구포국수가 만났으니 맛이 좋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다.

자연히 단골이 늘 수밖에. 한달이면 25번쯤 찾는다는 박경득(52·현대자동차 금정지점) 씨는 "면도 쫄깃해 좋지만 이 집 육수는 해장용으로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전날 과음했을 경우 그는 출근 후 기본적인 업무를 마치면 반드시 이 집을 찾는다. "문을 여는 오전 10시 전에 와서 기다리다 주인이 출근하면 대신 셔트문을 올리고 들어가 땡초를 넣은 구포국수 한 그릇을 해치워야 하루 일이 손에 잡히죠."   

몸속에 육수의 피가 흐르는 현대자동차 박경득(왼쪽) 씨와 부산대 황진연 교수.
 
역시 한달이면 20일쯤 이 집 국수를 먹는다는 부산대 지구환경과학부 황진연(58) 교수는 이 집의 국수 감별사. 다른 국수업체에서 맛보라며 샘플로 갖다준 국수의 경우 김 대표는 가장 먼저 황 교수에게 삶아 대접한다. 황 교수는 "제법 이름 있는 국수를 맛봤지만 구포국수만큼 탱탱하면서도 쫄깃한 국수는 없다"고 말했다.

육수의 피가 흐르는 이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속이 풀리는 진한 육수에 고명으로 단무지채 부추 김가루 깨소금이 들어가는 구포국수야말로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음식"이라고 말했다.

맨 오른쪽이 보통 그릇이며, 가운데가 2배인 곱배기, 맨 왼쪽이 4배에 해당되는 왕곱배기 그릇이다. 이 집은 왕곱배기를 4그릇이나 먹은, 그러니까 보통 국수 28그릇을 먹은 사람이 최고로 많이 먹은 사람이다. 새 기록이 나올 때까지 신기록 보유자는 공짜다.

줄 서 기다릴 때의 번호표.

구포국수.


'이가네 구포국수' 이원화 대표

- "국수공장집 아들이어서 반죽 절단 등 면 만들기가 어린 시절의 일상이었죠"

 "구포국수를 직접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구포국수 식당을 하는 경우는 부산에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부산 북구 구포1동 구포시장에서 '이가네 구포국수'를 운영하는 이원화(49) 대표는 '구포국수의 적자'라 할 수 있다.

이가네 구포국수 대표 이원화 씨.


이 대표의 선친은 지금의 가게에서 여섯 블록 떨어진 현 신용협동조합 맞은편 지점에서 1945~79년 34년간 구포국수 공장을 운영했다. 그 모습은 가게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고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저희 집을 포함해 7개의 국수공장이 함께 있었지요. 살림집과 함께 있는 가내공장 수준이었지요. 조금 큰 곳은 옥상에 건조대를, 저희 집은 마당 한쪽에 나무로 만든 건조대를 둬 국수를 말렸어요."

이가네구포국수.

육수. 땡초를 넣어야 맛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이 대표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건조대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확인된다. 자전거를 탄 사진 앞에서 이 대표는 한마디 툭 던진다. "저 자전거를 타고 추운 겨울 서남다리까지 구포국수 배달을 다녀왔어요. 어찌나 춥던지."

옛날 구포 일대 사진들.

이원화 씨의 옛날 사진.


이 대표는 초등학교 땐 건조대에서 떨어진 한 두 가닥의 국수 줍는 일을 했고, 중학교 땐 포장과 배달을, 고등학교 땐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와 반죽과 절단 작업을 했다고 한다.

당시 국수는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다. 밀가루에 굵은 소금 녹인 물을 섞어 반죽통에 넣은 후 수 차례의 롤러작업을 해 자르면 국수가 되고 이를 햇빛에 3~4일 완전히 말려야 상품으로 완성됐다.

"흔히 낙동강의 염분 섞인 바람이 맛을 낸다고 하죠. 하지만 이곳은 엄마산(이 대표는 어릴 때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백양산 줄기를 의미)이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줘 오랫동안 그 바람을 머물게 했기 때문에 더욱더 짭조름한 맛이 났죠."

이곳의 면발은 뜨거운 육수 속에서 살아 있었다. 남해산 멸치 등 15가지를 넣어 만든 육수는 약간 순하고 시원했다. 다른 집처럼 오래 끓이지 않는다. 그게 노하우라고 했다. 이 대표는 "이 맛이 오래 전 구포장터에서 먹던 그 맛"이라 강조했다. 국수는 이 대표가 일러준 당시의 레시피로 김해 주촌의 한 공장에서 주문생산 방식으로 뽑은 면이다.

그는 "무형의 자산과 가업을 잇는 자부심을 갖고 구포국수를 널리 알리는데 여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051)333-9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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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 구포촌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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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곤이

부산의 맛 - 선어회(鮮魚膾)

감칠맛 척도 이노신산 활어회의 10배
진짜 회맛 아는 수산꾼 등 식도락가들 선호

활어 즉사 후 5~10시간 숙성, 日 '스시' 보다 싱싱회에 해당

선어회.
숙성시키고 있는 돗돔. 잠시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보통 직장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회식을 한다. 장소는 대개 고깃집이나 횟집이 애용된다. 그렇다면 고깃집이나 횟집 직원들은 어디서 회식을 할까. 영업장인 자신들의 식당에서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고깃집 직원들은 대개 횟집에서 회식을 하지만 횟집 직원들은 애오라지 생선회만을 고집한다. 회는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일까.

국내 최대 연근해 수산물 위판장인 부산 공동어시장과 그 주변의 부산시수협, 대형기선저인망수협, 대형선망수협, 중도매인 등 수산 관련 종사자들도 한결같이 회식 때는 생선회를 찾는다고 한다.

흔히들 '생선회'하면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활어회(活魚膾)를 떠올린다. 부산시가 대표 음식으로 내세우는 생선회도 실상은 활어회다. 하지만 공동어시장 주변의 수산 관련 종사자들은 활어회 대신 선어회(鮮魚膾)를 즐긴다. 아니 선어회만 찾는다.

선어회는 원래 그물로 잡은 후 얼음이 가득한 어창에 넣은 고기를 선원들이 회로 떠서 먹던 방식이다. 어민들은 이를 빙장(氷藏)한 고기라고 한다. 활어를 잡아 피를 빼고 일정 온도에서 숙성시킨 것과 같은 원리이다.

수산 관련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선어회의 깊은 맛에 혀가 길들여지면 활어회는 심심해서 먹을 수 없다"고 말한다. 활어회가 평범한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즐겨 먹는 생선회라면, 선어회는 회를 누구 못지 않게 잘 안다고 자부하는 부산의 진정한 '수산꾼'들이 고집하는 회인 것이다.

선어회·싱싱회·활어회
 
'생선회 박사'로 유명한 부경대 식품공학과 조영제(59) 교수에게 선어회에 대해 물었다.

"일본인들은 활어회를 먹지 않고 선어회를 먹어요. 참치와 방어 등 붉은살 생선을 선호하는 일본인들은 붉은살 생선이 흰살 생선보다 선도 저하가 빨라 보다 맛있게 먹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선어회를 고안했죠. 이미 세계화된 '스시'와 '사시미'는 모두 선어회지요. 그러니까 '선어회'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건너온 셈이지요. 일본의 생선회, 다시 말해 선어회는 활어를 즉사시킨 후 일정한 저온으로 숙성시킨 것이지요. 맛은 우리나라 활어에 비해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나쁘게 말하면 약간 퍼석하지요. 일본의 사시미가 두툼하게 썰려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또 스시용이면 연하고 부드러워야 되지 않겠어요. 반면 즉석에서 잡아 칼맛으로 먹는 활어회는 씹는 맛에서 월등하지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씹히는 회를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또 하나 싱싱회는 활어회와 선어회의 중간쯤으로 보면 됩니다. 결국 선어회는 즉사시킨 후 2~4일 숙성시킨 회, 싱싱회는 쫄깃함이 유지되는 임계치인 10시간 이내 숙성시킨 회, 활어회는 즉석에서 손질한 회인 셈이죠."

이렇다 보니 현재 국내에선 생선회와 관련,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현재 부산에서 선어회를 취급하는 횟집의 경우 경매가 이뤄지는 새벽 시간대나 밤늦게 생선을 사와 손질한 후 점심 또는 저녁시간에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이럴 경우 숙성 시간은 5~10시간쯤 돼 엄밀히 말해 싱싱회에 해당된다. 하지만 선어횟집은 오랜 전부터 사용해온 용어라 바꿀 생각이 거의 없다. 지금으로서는 선어회를 '싱싱회를 포함한 광의의 용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참고로 '한국형 선어회'라 할 수 있는 싱싱회는 7년 전쯤 조 교수가 새롭게 만들었다.

맛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씹히는 맛이 활어회보다 덜할 것이라 알려져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조영제 교수는 "숙성시간이 4~5시간 정도면 육질의 단단함이 최고조에 이르러 활어회보다 오히려 씹히는 맛이 더 좋다"고 설명했다. 숙성 시간이 10시간쯤 되면 4~5시간대보다 차츰 육질의 단단함이 저하돼 활어회의 그것과 비슷해지지만, 감칠맛의 척도인 이노신산은 10배나 좋아져 혀로 느끼는 맛은 최고가 된다고 덧붙였다. 숙성시간이 일본처럼 2~4일 정도 되면 씹는 맛이 활어회보다 훨씬 떨어진다.

진정한 회맛은 선어회를 먹어봐야 안다

부산시수협 직원들이 단골인 집 '선어마을'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선어회의 깊은 맛에 중독됐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낮 12시께 서구 충무동교차로 인근 ABC볼링장 뒤 골목에 위치한 선어 전문횟집인'선어마을(051-255-9668)'에는 부산시수협 직원들이 모처럼 한데 모였다.

이 집은 공동어시장, 부산시수협, 대형선망수협, 대형기저수협 등 수산업 관련 종사자들의 단골집. 평소 공동어시장 내에서도 잘 보지 못하다가 식사시간 때 이곳 '선어마을'에서 더 자주 본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었다. 회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인 그들의 입맛은 몹시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생선회 도사'라는 그들이 즐겨 찾는 집인 점만 봐도 벌써 회맛을 짐작하고 남을 듯했다.

부산시수협 조항흠 총무과장은 "오랫동안 선어회에 입맛이 길들여져 활어회는 별 감흥이 없다"고 말했고, 부산시수협 남포동공판장 김태오 경매사도 "진짜 회맛을 아는 사람은 선어회만 고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선어횟집이라 수조가 보이지 않는 허름한 이 집에는 테이블이 겨우 8개로 30여 명 남짓 앉을 수 있다. 식사 시간 땐 예약은 필수다.

조그만 나무 도마 위에 회가 나왔다. 보통 네댓 가지가 올라오는데 이날은 돗돔 눈다랑어 병어 가오리였다. 씹히는 맛이 강한 병어와 가오리는 얇게, 돗돔과 눈다랑어는 비교적 두툼하게 썰어져 나왔다.

아주 귀해 전설의 물고기라 불리는 돗돔은 워낙 커 부위별로 맛이 다르단다. 이날은 목 부위였다. 아주 담백해 눈 감고 먹으면 쇠고기 육회라 해도 믿을 정도. 기름기가 많은 눈다랑어 뱃살은 진한 향이 일품이었고, 병어는 구수했다. 가오리는 특유의 쫄깃함이 살아 있었다. 활어회에 비해 육질의 단단함 즉 씹는 맛이 전혀 손색 없었고 향은 정말 살아 있었다.

'선어마을' 강화순 대표는 맛있게 먹는 법을 일러줬다. "병어 등 흰살생선은 된장, 붉은살 생선은 고추냉이, 가오리는 초장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신김치에 싸서 먹어도 별미죠."

살짝 데친 돗돔 껍질. 손이 떨려.... 이 놈의 수전증이.....
생선뼈를 고와 미나리와 무에 소금간을 한 맑은탕.

살짝 데친 돗돔 껍질은 꼬들꼬들한 느낌이고, 생선뼈를 고와 미나리와 무에 소금간을 한 맑은탕은 속이 확 풀린다. 횟집에 와서 이렇게 감동하며 먹은 기억이 실로 오래간만인 것 같았다. 해운대, 녹산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단골이 있다는 강 대표의 말에 수긍이 간다.

요즘 활어횟집에서도 고기를 썬 후 수분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육질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5~10분 정도 냉장고에 넣었다 손님들에게 내놓는 것도 결국 선어회의 장점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보면 된다. 결국 회맛은 선어회가 으뜸이라는 것이다.


'선어마을' 강화순 대표 인터뷰

- "좋은 횟감이라면 아무리 비싸도 구입, 제값 받고 단골에 대접"   
 
"손님들에게 맛있는 선어회를 대접하려면 좋은 고기를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선어 전문횟집 '선어마을' 강화순(55·사진) 대표는 "이 가게를 하기 전에 '자갈치 아지매'를 한 20년 했다"며 "생선에 관한한 그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했다.

20여 년 동안 생선과 씨름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긴 강 대표는 5년 전 기존의 '선어마을'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선어마을'은 우선 제철에 나오는 다양한 횟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오랫동안 자갈치와 공동어시장 주변에 쌓아 놓은 인맥 덕분에 좋은 고기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선주나 어민들이 간혹 그물에 귀한 횟감이 올라올 경우 선상에서 직접 강 대표에게 연락하거나, 경남 삼천포 통영 심지어 전라도 쪽에서도 특이한 고기가 있으면 탑차에 실어 보낸다는 것.

그렇다고 마냥 갖다 주는 고기만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강 대표는 매일 새벽 공동어시장 위판장이나 밤 10시부터 여는 부산시수협 남포동공판장을 직접 찾아 횟감으로 쓸 선도 좋은 고기를 직접 고른다. "비싸서 안 사는 경우는 없어요. 좋은 횟감이라면 아무리 비싸도 구입해서 단골들에게 제값을 받고 대접을 하지요."

여기에 피가 살에 묻지 않게 요령있게 생선을 장만하는 기술과 아끼지 않고 손님들에게 퍼주는 통 큰 심성까지 갖춰 문을 연 지 5년 만에 단골들이 급증, 이제는 식사 시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렸다.

흔히 선어회는 활어회보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 대표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양식 고기를 절대 쓰지 않고 무엇보다 그날 그날 공수해서 쓰기 때문에 활어회 가격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이 집 선어모둠회는 소(2인용) 3만5000원, 중(3~4인용) 5만 원, 대(4~5인용) 7만 원이다.

"선어회는 물량 자체가 적어 이윤이 많지 않아요. 만일 돈이 되면 이런 집이 많이 생기지 않겠어요." 실제로 선어회를 취급하는 횟집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충무동 '선어마을' 과 '거제횟집', 중앙동의 '중앙식당' '오뚜기식당', 그리고 자갈치시장의 '명물횟집'이 있다. 명물횟집은 너무 비싸다.

'선어마을'.

Posted by 곤이

경남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늘밭마을 '자연생활의 집'(2)

- 9박10일 자연 체험 프로그램 통해 건강 회복 
- 대부분 암환자 찾아와 가정서의 투병생활 예습
- 해발 450미터 맑은 공기 마시며 산속에서 기체조
- 매끼 정성 다하고 색다른 푸짐한 유기농 자연뷔페식
- 병마로 인한 조급함·두려움, 웃음치료·명상 등 통해 극복

'자연생활의 집'의 자연식 식단은 아침이 가장 푸짐하다. 직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19년째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송학운 원장과 자연식 식단을 개발한 그의 부인 김옥경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연생활의 집' 송학운 원장은 암환자들은 예외없이 문의전화에서부터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난다고 했다. 이후 프로그램 첫날 얼굴을 마주 대해보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거나 어떤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이미 숱한 병원 치료와 민간요법 끝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요. 투병생활에 이골이 나 병이 하루 이틀 사이에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여전히 병에 대한 조급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송 원장은 암과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선 조급함과 두려움 그리고 이유 없는 분노를 하루빨리 버리라고 조언한다. 암은 감정의 절제 없이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병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생활의 집'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연체험 9박10일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특별한 것이 없다. 암환자들이 마냥 여기 있을 수만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향후 각자의 가정에서 지켜야 할 생활법과 식사법을 미리 체험해보는 일종의 예습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암을 먼저 극복한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줄이면 조금은 쉽게 투병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하루 일과는 이랬다. 오전 6시 맨손체조, 오전 7시30분 아침, 낮 12시30분 점심, 오후 5시30분 저녁, 오후 7시30분 송 원장의 건강강의. 나머지 시간은 산책이나 등산 등 자유시간을 갖는다.


맨손체조와 기(氣)체조

고교 체육교사 출신인 송학운 원장과 함께 오전 6시면 어김없이 맨손체조를 한다.


'자연생활의 집'은 양산 원동자연휴양림 뒤로 열린 길을 따라 4.5㎞나 되는 구절양장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야 만난다. 해발 450m 깊은 산속. 청량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공기는 아주 맑지만 산속이라 아직 춥다. 정면으로 토곡산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이곳은 주변 풍광과 앉은 터만 볼 때 도시인들이 한 번쯤 꿈꿔온 그야말로 대자연 속의 전원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오전 6시. 고교 체육교사였던 송 원장의 구호 아래 맨손체조를 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 말고는 대부분 참여한다. 절실한 목표가 있기에 다들 진지하다.

체조 말미엔 서로 어깨도 주물러주고 구호도 크게 외친다. 마당 한쪽 정자에 걸린 현판에 적힌 문구처럼. '나는 다 나았다!'


체조가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발걸음을 산 쪽으로 옮긴다. 신선한 아침 공기에 맑은 새소리, 이 모두가 암환자들을 위한 숲치료제들이다. 20분쯤 쉬엄쉬엄 오르면 만나는 쉼터에서 기(氣)체조를 하기 위해서다. 이는 암환자들의 자발적인 행위이다.

간암 수술 후 2년 전 입소한 최고령 이훈경(82) 씨의 주도하에 이뤄진다. 이때쯤이면 쉼터 건너편에서 태양이 떠오른다. 쉼호흡을 크게 하며 간절한 자기 암시에 들어간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도 돌파한다. 마음엔 자신과 용기가 샘솟는다. 세포여 깨어나라'.

유방암으로 8년째 투병 중인 김금희(가명) 씨는 "새벽의 체조와 자연식 식단 덕분에 점점 몸 상태가 좋아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체조는 간암 수술 후 2년 전 입소한 최고령 이훈경(82) 씨의 주도하에 이뤄진다.

■웃음치료, 숲치료, 건강강의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웃음치료 강의도 열린다. 10년 전 직장암에 걸려 이곳에서 송 원장의 적극적인 삶을 배워 건강을 회복한 황재수(51) 씨가 강사로 나온다. 본업이 치과기공사로 웃음치료사인 그는 그 누구보다 실의에 빠져 있는 암환자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매 기수마다 자발적으로 환자들을 찾는다.

웃음치료 강의에서 크게 웃는 암환자들.

암환자들은 '명랑 바보'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는 웃음과 음악은 투병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며 어른들이 따라 하기에는 유치한 노래와 율동으로 참석자들의 혼을 쏘옥 빼놓는다.

수술 후유증으로 아직도 기저귀를 해야 하는 그는 암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맑은 공기와 웃음이라며 바보처럼 자주 웃으면 몸속의 암이 유치해서 그냥 나간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웃을 것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거울은 절대로 먼저 웃지 않는다"며 "거울을 볼 때마다 큰 소리로 웃으라"고 충고했다.   
 
숲치료는 송 원장과 같은 학교에서 같은 날 명예퇴직한 친구이자 동료 교사였던 하영욱 씨가 산행가이드를 하는 일종의 등산교실. 하 씨는 '자연생활의 집' 이웃에 살고 있다. 주로 남자 암환자들이 참여해 하 씨의 안내에 따라 보통 2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 정도 산행을 한다. 위암환자 김길수(가명) 씨는 "산속에 살며 등산을 매일 하다 보니 몸이 아주 가벼워져 건강이 호전돼감을 느낀다"고 산행예찬론을 펼쳤다.

암환자들은 시간이 날 때면 등산을 한다. 산행 후 정면 저 멀리 토곡산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암환자들.

뭐니뭐니해도 '자연생활의 집'의 최고 인기 강좌는 송 원장의 건강강의. 매일 저녁 식사 후 오후 7시30분 열린다.

"지금까지 썼던 책 내용을 중심으로 자연식·등산과 운동·자연환경·심리(자신감) 등을 주제로 강의하는데 재수강자들이 많기 때문에 항상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돼 꽤 신경 쓰이지만 결국 환자 스스로가 해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강의하고 있어요."

이날 강의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마음에서 건강은 저절로 회복된다는 것이 주된 요지였다. 한 참석자는 "아무리 몸이 안 좋아도 암을 이겨낸 '인간승리' 송 원장님 강의는 절대로 빼먹지 않고 챙긴다"며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송학운 원장의 건강 강의. 암환자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자연식 식단이 보약이지요

모든 일과가 대자연 속에서 이뤄지는 '자연생활의 집'에 암환자들이 몰리는 진짜 이유는 송 원장의 부인 김옥경 씨의 정성 어린 자연식 식단 덕분이다.

송학운 원장의 부인 김옥경 씨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침.

점심1.

점심2.





혹자는 채식이 곧 자연식이 아니냐고 문의하지만 엄연히 다르다고 김 씨는 답한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되 자연 그대로의 천연 소스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식이라 강조한다. 설탕 대신 천연꿀이나 호박조청을, 식초 대신 매실청이나 레몬즙을 쓰는 식이다. 표고버섯 다시마 양파 등을 말린 가루로 천연조미료를 만들고, 채소국물을 늘 주방에 갖춰 감칠맛을 내게 한다. 치자와 비트 등 식품에서 얻은 천연색소를 사용, 눈을 즐겁게 해 식욕을 돋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자연식을 한다고 해서 영양을 고려하지 않고 몸에 좋다는 음식만 먹는 것도 아니다. 영양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탄수화물 60%, 단백질 지방질 비타민 무기질 각 10%'가 이곳 '자연생활의 집' 자연식의 황금비율이다.

육류·생선류·계란·우유 등을 올리지 않는 자연식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단백질이나 지방질을 보충할까. 김 씨는 "단백질은 콩류로, 지방질은 견과류로, 비타민과 무기질은 채소류에서 섭취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 이곳의 하루 식단은. 모두 뷔페식이며 대개 13~15가지 음식이 제공된다.

아침은 탄수화물을 위주로 하되 단백질 무기질 지방질 비타민 등 5대 영양소를 두루 갖춘 푸짐한 식단이 마련된다. 이날은 통밀빵 밤 무화과 인절미 무순 알로에 사과 죽 삶은 고구마와 각종 야채가 나왔다. 점심은 하루 중 가장 포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탄수화물 위주로 꾸며진다. 이를테면 풍성한 채소와 버섯 콩나물 밀고기 두부 잡채 같은 요리에 현미밥을 먹는다. 반면 저녁은 국수류나 수제비에 고구마 등을 곁들이는 간단한 메뉴가 나온다. 수면 상태에서 음식물은 위와 소화기관에 부담을 줘 아침에 그만큼 노폐물이 많이 생겨 개운한 아침을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가 찾은 날 저녁엔 메밀비빔국수와 녹두송편, 녹두죽 그리고 각종 야채 등이 나왔다.

세 끼 모두 훌륭한 식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과 정성이 가득했다. 여성 암환자들은 "매 끼니를 이렇게 내놓는 안주인 김 씨의 정성에 감복할 정도"라며 칭찬 일색이다. 이곳 암환자들은 일주일 정도 자연식을 하면 변이 달라지는 등 몸 상태가 나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김 씨는 "이달 중순부터 텃밭을 갈아 엎어 직접 채소를 가꾸게 되면 진정한 유기농 자연식 식단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씨는 자연식을 어디서 배웠을까. 사연이 있었다.

남편 송 원장이 직장암 수술 후 처가 쪽인 경북 청도 산골로 가서 6개월 정도 생식을 했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자 한 지인이 자연식 요법을 하는 곳을 일러 주었다. 양산의 모 요양원이었다.

하지만 그땐 병치료로 집을 날리는 등 돈이 바닥난 상태여서 송 원장만 혼자 입소하고 부인 김 씨는 처가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처음 부부가 떨어져 있게 됐단다. 부인 김 씨는 이틀 만에 면회를 가 원장 부인에게 사정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져 요양원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됐다. 자연식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타고난 요리솜씨에 부지런함 그리고 남편을 위해 정성까지 담아내는 김 씨의 일솜씨에 감탄한 원장 부인은 아예 김 씨에게 주방장 역할을 맡겼다.

원래 이 요양원의 자연식은 서양에서 들여온 서양식 요리의 일종이었다. 틈나는 대로 김 씨가 한식으로 바꿔보니 환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내친 김에 우리 체질에 맞는 자연식 식단을 하나씩 개발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송 원장 부부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식 밥상과 산속에서의 맑은 공기, 암을 이겨내야겠다는 긍정적 마음가짐이야말로 암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055)381-8153

밀고기를 만드는 김옥경 씨.

소독은 철저히. 150도에 맞춰 식기를 굽다시피 한다.


송학운 원장이 점심 식사 후 모처럼 마당에서 함께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옥경 씨의 고무신이 눈에 띈다.

암환자인 부인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애처롭다.

아직 겨울인 산속에서 활짝 핀 꽃화분을 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암환자들. 꽃이 희망의 끈으로 보였다.


'자연생활의 집' 텃밭. 이달 중순부터 땅을 갈아엎어 유기농 야채를 재배할 계획이다.

현대의학도 포기한 환자들 대자연생활로 이긴다-자연생활의 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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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 자연생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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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곤이

경남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 늘밭마을 '자연생활의 집'(1)
                           -대자연 생활로 병마를 이겨내는 사람들

   

양산시 원동면의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한 '자연생활의 집'에 입소한 암환자들이 건너편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산에 올라 기(氣) 체조를 하고 있다.

 경남 김해에서 남편과 함께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권순자(47) 씨. 10년 전만 해도 그는 1년을 살기 힘들다는 암환자였다. 남편의 위장 내시경 검사에 동행했다 우연하게 난생 처음 받아본 내시경 검사에서 뜻밖에도 위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위의 상당 부분과 쓸개를 제거하는 대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이는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 메스껍고 구역질도 나고 밤엔 잠을 못 이뤘다. 그는 이러다간 병원에서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2차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도망치다시피 퇴원했다. 무엇보다 2차 항암치료를 해도 생존 확률이 절반이라는 병원 측의 설명이 못 미더웠다. 어린 두 딸은 울고 남편도 울었다. 그때 처음 뼈저리게 느꼈다. 암환자 한 명이 있으면 멀쩡한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난다는 사실을.

서울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김명희(58) 씨는 권 씨보다 정도가 심한 경우. 평소 병원 한 번 가본 적 없는 그는 8년 전 바이어와의 미팅 중 배가 아파 잠시 화장실을 찾았다. 항문으로 설사하듯 피를 쏟아냈다. 결국 그는 바이어와의 만남을 모두 끝내고 4시간 후 병원을 찾았다. 직장암 3기였다. 몸을 돌보지 않은 결과였다. 직장 제거 수술 후 건강을 되찾은 듯 했지만 4년 뒤 다시 몸이 안 좋아 병원을 찾았다. 이번엔 폐암이었다. 1년 뒤엔 부신암으로까지 전이됐다. 결국 대수술 두 번과 여러 차례의 항암치료로 몸은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실의에 빠진 두 사람. 그들이 우연히 문을 두드린 곳은 19년 전 직장암으로 6개월 선고를 받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송학운(61) 씨가 운영하는 양산에 위치한 '자연생활의 집'.

권 씨는 서점에서 송 원장이 쓴 일종의 투병기를 보고, 김 씨는 TV에서 자연식으로 암을 이긴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고서였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살 길을 찾던 그들에게 그 책과 그 프로그램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양산 원동면 내포리 원동자연휴양림 뒤 토곡산 자락 해발 450m 산골짝에 위치한 '자연생활의 집'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찾는다. 현대의학이 포기한 사람들(20%), 수술 후 병원을 다니면서 몸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사람들(70%) 그리고 자연식 등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10%).

"이곳엔 암환자를 위한 특별한 비법이 없다." '자연생활의 집' 송 원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식과 맑은 공기 속의 꾸준한 운동 그리고 병을 이겨내겠다는 긍정적 마인드가 비법이라면 비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1996~2000년 양산 덕계의 한 산기슭에서 '자연생활의 집'을 운영하다 주변에 공단이 들어서자 공기 좋은 지금의 이곳 산속으로 옮겨 9박 10일짜리 자연체험 프로그램을 무려 184회나 운영했다. 한 기수가 75명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1만4000여 명이 다녀갔고, 덕계까지 포함하면 2만 명에 육박한다. 이곳이 특히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현대의학이 포기한 암환자들이 찾아와 건강을 회복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이곳을 찾아 암환자들과 함께 먹고 자고 산에 오르는 등 24시간을 보냈다. 역시 비법은 없었다. 굳이 찾자면 널리 알려진 대로 자연식과 맑은 공기, 그리고 긍정적 마음가짐이었다.

권 씨와 김 씨는 어땠을까. 권 씨는 수술 후 한 달 만에 이곳에 입소, 다섯 차례 송 원장의 9박 10일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금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입소한 김 씨는 12월 중순 CT촬영을 한 결과 신약이 나오면 연락하겠다는, 사실상 '치료 불가' 진단을 받았지만 현재 산 정상에도 오르는 등 건강한 생활을 하며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난데없이 암을 만난 사람들은 십중팔구 평소 건강에 자신 있던 사람이랍니다. 화창한 이 봄,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은 건강할 때 챙기고, 혹 탈이 나면 대자연 속에서 정답을 찾으세요." 송 원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뼈 있는 충고였다.


'자연생활의 집'의 점심 식사. 자연식은 암환자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대자연과 함께 하며 밥상과 일상에서 건강을 찾는다-자연생활의 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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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베티, 일본 미요코 "어머님 아버님, 제 한국요리 솜씨 기대하세요"


필리핀 베티(왼쪽)와 일본 미요코(오른쪽). 가운데는 박경숙 실기 선생님.

우리나라 사람들도 쉽게 따기 어렵다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시험.
한국산업인력공단 부산남부지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응시자의 필기합격률은 30~40%에 이르지만, 이론 시험을 통과한 수험생들만 볼 수 있는 실기시험의 평균 합격률은 겨우 15% 안팎에 불과하답니다. 10명 중 2명도 채 안 된다는 얘깁니다.

 시험의 특성상 독학은 사실상 불가능해 응시자들은 대개 일반 요리학원에 등록, 2개월 과정으로 이론과 실기를 배웁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 합격률밖에 나오지 않으니 꽤나 어려운 시험인가 봅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말 경남 함양에선 믿지 못할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한글과 우리나라말에도 서툰 외국인 결혼이민자 두 여성이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필리핀 출신의 데시에엠 베티(32)와 일본서 온 야마모토 미요코(40) 입니다.

 어떻게 해서 시험에 합격했냐구요. 이 두 아줌마는 함양군에서 군민들을 대상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반에 등록했답니다. 이 과정은 군이 지역 특산물인 머위 두릅 참죽 등을 응용한 요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기초 단계로 8년 전부터 개설, 지금까지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베티의 경우 딸 셋에 현재 임신 중이며, 미요코 씨는 슬하에 2남 2녀를 둔, 요즘 함양군으로 봐선 당연히 상을 줘야 할 다산(多産) 여성이라는 겁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젊은 주부라면 아이 뒷바라지 하느라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악조건이지만 이들 두 외국인 여성은 애기를 업고서라도 수업에 참가하는 열정을 보여줘 주변 사람들의 감탄케 했답니다.

 베티와 미요코는 하나같이 "애기를 데리고 가면 실기의 경우 직접 해볼 수는 없지만 대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선택"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렇다면 베티와 미요코는 이토록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에 왜 응시했을까요.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음식을 배웠지만 하면 할수록 큰 벽에 부딪혔답니다. 그들은 자녀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나아가 시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떳떳하게 대접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결국 한계에 이른 것이었죠. 마냥 인스턴트 음식이나 된장찌개 김치찌개만 늘 내놓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우리와 정서가 다른 필리핀이나 일본 음식만을 반복해서 상 위에 올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애오라지 남편만 믿고 이역만리 한국으로 날아온 이 여성들의 작은 몸부림이 결국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으로 귀결된 셈입니다.

  베티와 미요코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수줍으면서도 야무지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배운 여러가지 요리 중 하나를 골라 시부모님께 직접 해드리고 싶어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베티와 미요코의 작지만 아름다운 가족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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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곤이